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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by 연꽃아래
인권/평화 지구촌 역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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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정의 본문

'기억의 전쟁'이라고 명명되는 베트남전쟁은 대한민국의 부흥에 기여한 여행이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났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은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참전 했던 군인들 중 일부는 민간인을 죽였다는 괴로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연꽃아래'는 베트남 전쟁 중 있었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문제에 대해 정의했습니다. 

Why

Background & Emotional
1.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2016년 겨울, 촛불 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지하철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을 만났습니다. 촛불 집회로 연일 북적거리는 지하철 내부에서도 그는 눈에 띄는 존재였습니다. 작은 태극기를 손에 쥔 채 베트남 전 참전 경험에 대해 큰 소리로 말하던 그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하는 말에 힘을 얻었는지, 그는 연신 애국과 희생, 조국 경제에 대한 말들을 꺼냈습니다.

 

단순히 이 이야기가 지하철 내 여러 가지 소음 중 하나로 끝나버렸을 수 있겠지만, 일장 연설을 끝낸 참전군인의 다음 행동은 많은 고민지점을 안겨주었습니다. 일장 연설이 끝난 후 그는 잠시 신발을 벗어 붕대를 갈았고, 그 붕대에는 염증으로 인한 진물인지 피 인지 모를 액체가 묻어 있었습니다. 상처에 대한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전쟁 이후 “후유증”이 남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공 : 연꽃아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모습은 잔상으로 남았습니다. 참전군인이라는 집단이 아니라, 한 개인인 참전군인을 만났을 때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해석하기 위해 뒤늦게 베트남 전쟁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뜻밖에도,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라는 문제에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제가 고민하던 참전군인의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려운 순간들이 반복될 때 우리는 우선,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바로 <연꽃아래>의 시작이었습니다.

2. 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일까요?

‘기억의 전쟁’. 베트남 전쟁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한국군은 전쟁 기간 동안 5,099명의 전사자와 11,23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1] 연인원 총 32만명, 상시적으로 4만 5천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에 있었습니다. 다치지 않고 살아온 병사들도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1971년 12월 4일, 한국군은 제2해병 여단 철군을 시작하여 1973년 3월 23일 철수를 완료합니다. 전쟁으로 9천여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민간인 학살 희생자, 베트남 여성과 한국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2만여 명에 달하는 한국군의 고엽제 피해자들이 발생했습니다.[2]

 

 

베트남 전쟁은 한국 사회에서 조국의 부흥을 위해 기여한 전쟁으로 기억됩니다. 어떤 사람은 베트남 전쟁을 경제 성장을 위한 전쟁, 혹은 한국전쟁을 지원했던 미국에 대해 은혜를 갚은 전쟁으로 기억합니다. 이러한 기억 속에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일로 치부됩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은 누군가의 삶을 파괴했고, 집을 빼앗았으며, 가족을 죽인 전쟁이기도 합니다. 전쟁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집과 삶의 터전, 가족을 잃었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몸과 마음에 남은 전쟁의 상흔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진상규명이 미뤄지는 동안 피해자들은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말하는 거짓말쟁이’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쟁 시기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기억을 역사의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기억의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베트남 퐁니, 퐁넛 마을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응우옌티탄 씨는 평생 동안 배에 총탄의 자국을 남기고 살아야 했고, 하미 마을의 팜티호아 씨는 의족을 하고 지내야 했습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첫 시작은 진상규명입니다. 어떠한 부대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는지, 어떠한 사람의 명령으로 학살이 발생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정부가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무엇을 도모했는지도 추측만이 존재합니다. 베트남 꽝남성 지역 학살 이후 51년,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1] 경향신문 “10월 14일 할머니와 어머니 버리고 떠난 비정한 한국인···’라이따이한’의 눈물” (2019.10.14 기사)

[2] 베트남 학살 9000여명, 고엽제 피해자 1만 6천명 손해배상 청구 소송

 

Who & What

Fact & Data
1. 이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대상은 누구이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의 고통

 

베트남 전쟁은 꽝남성에서 4000여명, 꽝응아이성에서 1700여명, 빈딘성에서1500여명, 푸옌성에서 2000여명의 민간인들의 목숨을 빼앗아갔습니다.[3] 이 통계조차 지금까지 밝혀진 사안들에 대한 것이며, 아직 알려지지 못한 많은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들이 존재합니다.

 

 

“왜 한국군은 여성과 어린아이뿐이었던 우리 가족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나요. 어째서 집까지 모조리 불태우고 시신마저 불도저로 밀어버린 것인가요. 이 자리에 오지 못한 다른 학살 피해자와 유가족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대신하여 묻습니다. 어째서 한국군은 그러한 끔찍한 잘못을 저질러놓고 50년이 넘도록 그 어떤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인가요.”

- 2018년 4월 1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퐁니, 퐁넛 마을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

 

이들의 고통은 단지 학살 당시의 세계에만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곳곳에 존재하는 증오비는 한국군에 대한 분노를 ‘뼈에 새긴 증오’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사라진 마을을 떠나 오랜 시간 베트남 전역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마을 자체가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사회 서비스를 누릴 수 없었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베트남 지역에서 매우 가난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재생산하고 있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잘못된 기억들은 이들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베트남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 기억하는 전쟁기념관, 베트남 전쟁을 가벼운 소재로 사용하는 미디어들은 한국 사회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기억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기억 방식은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를 무시하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존재를 역사 속에서 지웁니다. 사과와 배·보상, 진상규명의 문제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저지른 나라가 의지를 가질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기억은 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3]  학살 피해자 통계

2. 이 문제와 관련한 이해관계자들은 누구고,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한국 정부의 입장

2001년 8월 베트남의 쩐 득 르엉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최초로 부분적이나마 사과 뜻을 표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과는 1999년부터 진행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 내에서의 광범위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음의 빚’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유감 표현을 한 바 있습니다. 2018년 3월 23일 문재인 대통령도 쩐 다이 꽝 국가주석을 만나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라고 발언한 적도 있습니다.[4]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국가 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세계 평화유지에 공헌한 월남 참전 유공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고, 박근혜 정부는 2014년에 열린 파병 50주년 행사를 청와대 주최로 진행했다가 베트남 정부의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현충일 추념사에 “베트남 참전 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베트남 정부의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5]

 

최근에는 국방부 공식 입장으로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답변이 제출되어 논란이 된 바가 있습니다. 2019년 4월 4일,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은 한국 정부에 진상규명과 공식적 사과, 피해 회복 조치를 요구하는 청원을 제출하였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해당 청원을 국방부로 이관했고, 2019년 9월 9일 공식 입장으로 “국방부 보유 자료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한국 측의 단독조사가 아닌 베트남 당국과의 공동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나, 한국-베트남 정부 간 공동조사 여건이 아직까지 조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라 밝히며 진상조사를 할 수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20 년간 피해자들과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공론화한 많은 이들이 피해자 증언과 문헌 자료를 제출하였으나 이를 모두 불인정한 것입니다. 또한 한-베 공동조사 이외에 한국 정부가 별도로 진상조사를 진행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출처: 조선일보 “’미안해요, 베트남’...한국군 베트남 전 민간인 학살 사과 촉구” (2018.04.23)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와 배상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고, 피해자들을 향한 유감 표현 외의 공식적 사과는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감 발언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음의 빚’ 발언은 베트남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못했습니다.[6] 이러한 반응은 베트남 정부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입장과 연관됩니다. 베트남 정부는 ‘과거를 닫고 미래를 보자’라는 말로 베트남 전쟁을 언급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수십 년간의 식민지 생활, 수십 년간의 전쟁 이후 베트남에 사는 국민들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베트남 정부는 이러한 상처를 다시 드러내기보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를 어떻게 닫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많은 논쟁거리로 남았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과거를 닫고 미래로’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베트남 정부가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쉽게 논의 되기는 어렵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분명 베트남 전쟁을 미화하는 한국 정부의 발언에 대해 거듭 항의를 한 바도 있습니다.

 

또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베트남 정부 이외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지난 2019년 4월,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이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한국 정부 그 누구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라는 말이 기자회견에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사과의 주체가 오직 한국정부이거나, 사과 받아야 하는 대상은 오직 베트남 정부일 수 없다는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는 제대로 된 사과와 함께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참전군인들의 입장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참전군인들의 입장은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2014년,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떤런 씨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참전 군인들이 모여 항의 시위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두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 서울 시내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시민평화법정>이 열렸을 때도 참전군인 중 일부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수이지만,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일부 군인들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양심 증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966년 해병 청룡부대에 소속되어 베트남에 갔던 김영만 씨는 2000년부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증언 활동을 해왔습니다. 부상을 입은 후 전역한 그는 국가로부터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았지만, 베트남 전쟁과 연관되고 싶지 않아 수령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4월 시민평화법정에서 모자이크가 처리된 한 참전 군인의 증언도 이어졌습니다. 참전군인은 퐁니, 퐁넛 마을의 학살 직후의 현장을 우연히 지나가야 했던 그 군인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그 광경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증언하였습니다.

 

출처: 허프포스트코리아,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게 바란다” (2015.04.10)

 

이런 차이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파병이 매우 오랜 시간, 대규모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발생하였습니다. 후방에 있었던 참전 군인의 기억과 전방에 있었던 참전 군인의 기억이 다르고,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참전 군인과 아닌 참전 군인의 기억이 다를 것입니다. 더 나아가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하고도 이들이 ‘베트콩’이었다는 설명을 믿었던 군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전 군인들은 참전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전투 수당의 90% 이상을 박정희 정권에 빼앗기고, 트라우마 치료 등의 후속 대책도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베트남 전쟁 이후 자살한 많은 참전 군인들이 베트남 전쟁과 무관하게 ‘개인 사유’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합니다. 이들은 아직도 국가에게 전투 수당 지급을 요구하고, 전투수당이 다른 명목으로 쓰였다는 증언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4] 역대 대통령들의 사과 발언

[5] 베트남, 문재인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반발, 베트남, 한국군 파병 50주년 행사 자제 요청 (추후 보도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됨), 이명박 대통령 시기 국가 유공자법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반발

[6] 문재인 대통령 사과, 베트남은 한줄도 보도 안했어요

 

3. 이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전쟁 당시의 진상규명의 문제

1990년 말까지,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퐁니 마을과 퐁넛 마을의 학살에 대한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것은 미군이었습니다. 당시 주월미군사령관이었던 W.C.웨스트몰랜드는 68년 4월 29일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에게 퐁니, 퐁넛 마을에서 찍힌 학살 직후의 사진들과 증언들을 모아 편지를 보냅니다. 진상규명과 해명을 요구하는 편지를 받고 채명신 사령관은 이 사안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채명신 사령관은 답장 편지에 “대량학살은 음모이며 공산주의자들이 무차별적으로 일으킨 것이라는 논리적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미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인 ‘밀라이 학살’의 사진이 뉴욕 타임즈, 라이프 등의 잡지에 공론화됩니다.

 

사진이 보도될 때 즈음, 군대의 주요 간부들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중앙정보부의 조사는 밀라이 학살이 공론화된 사실과 퐁니, 퐁넛 학살 피해자들이 베트남 정부에 넣었던 진상규명 청원과 곧 다가올 1970년 사이밍턴 회의(미국과의 안보조약 및 대외방위 공약에 대한 조사분과위원회 회의)의 영향을 받아 진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사이밍턴 회의에서 전쟁 시 잔혹행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1970년 2월 17일 외무부 장관은 국방부 장관 앞으로 “미 국무성은 앞으로 있을 미 상원 사이밍턴 조사위원회에서 주월 한국군의 잔학행위 등 불상사설에 관한 질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됨.”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전문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중앙정보부는 퐁니, 퐁넛 학살에 관한 3명의 장교 및 대위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7]

 

그러나 아직까지 중앙정보부에서는 해당 조사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국정원을 상대로 해당 자료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소송을 냈고 이후 승소했음에도 국정원은 해당 문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조사 자료를 비공개한 조치는 진상규명의 흐름에 큰 걸림돌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문제

교육에서조차 베트남 전쟁은 뜨거운 화두입니다. 2010년 금성 출판사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본문이 아닌 보조 자료를 통해 베트남 전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민중적 지지기반이 약한 남베트남 정권을 지원하였고, 이에 중국, 소련이 사회주의 정권인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해방 민족 전선을 지원함으로써 베트남은 동서 양 진영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해당 내용에는 베트남 전쟁의 결과 및 영향에 대한 설명은 빠져있습니다. 대신, 참전 당시의 명분이었던 ‘공산화 방지’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8] 비슷한 서술은 2010년 두산동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도 나타납니다. 두산동아에서는 “베트남에서 일어난 인도차이나 전쟁과 북위 17도선의 남북분단 등으로 냉전이 점점 격화되었다”정도로만 베트남 전쟁을 소개합니다.

 

제공 : 연꽃아래

 

한편 2013년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에는 “전쟁 과정에서 5천여 명의 한국군이 희생되었으며, 지금도 부상과 고엽제 후유증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 밖에도 베트남 민간인 학살, 라이따이한 등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라고 서술합니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개정된 두산동아 교과서에서도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직접 언급했으며, 리베르 교과서에서는 고엽제 피해 문제와 라이따이한 문제를 서술하였습니다. 다만 교학사 교과서는 이러한 서술이 전부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서술에 대해 2015년 국정화 교과서 논란 당시 교육부는 “이러한 표현은 전쟁의 불가피성과 교과서임을 감안할 때 과도한 표현으로 부적절하다”며, “‘학살’이라는 표현은 의도성, 무모함, 잔혹함을 내포한 것으로 자칫 국군 명예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교과서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언급이 제외되어 있거나, 자세하게 기술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시각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9] 실제로 2009년 5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을 교과서에 싣기 위한 일반 시민의 청원 캠페인이 다음 아고라에 열렸으나 많은 반대에 부딪혀 실패한 사례도 존재합니다.

 

 

[7] 해당 부분 전체는 고경태 기자의 1968년 그날 연재 기사를 참고함

[8] [한국과 베트남의 베트남전쟁에 관한 인식과 교육], 김종욱, 아시아연구, vol.20 No.4, 2017

[9] “검정 한국사교과서 2종류, 북 서적 발췌”

4.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존 사례는 무엇이 있고, 그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요?

민간 차원의 노력

오랜 시간 동안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문제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진실을 알리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이어졌습니다. 1999년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이라는 기사가 한겨레 21에 공개된 이후 30여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되었습니다. 한겨레 21은 50회 이상 베트남 민간인 학살 관련 보도를 내보냈고, 나아가 모금운동을 전개합니다. 이른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베트남의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고자 하는 수많은 손길들이 모여 1억 5천만원의 성금이 모금됩니다. 이후, 여러 시민단체들이 모여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를 창설합니다. 진실위원회를 중심으로 토론회가 열리고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도 제작됩니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면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체들도 발족합니다. 한베평화재단,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등이 현재 활동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NGO신문 “시민평화법정, ‘베트남전, 한국구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나선다” (2018.03.27)

 

2018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서울 시내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단체들이 참여하였고, 실제 학살 피해 생존자인 퐁니, 퐁넛 마을의 피해 생존자와 하미마을의 피해 생존자가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민간 차원의 법정이었지만 처음으로 국가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민간 차원의 활동가들은 국가 차원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진상규명 실시와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활동가들은 학살 마을에 조화 보내기 운동과 장학사업 등 피해자와 연대하는 많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활동으로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는 연꽃아래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는 “100년이 걸리든 200년이 걸리든 세월과 상관없이 ‘해결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학살 피해자들이 다시 살아나거나 한 맺힌 시간들을 다시 뒤로 돌릴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결과 가까워질 수 있을지언정,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온전한 해결이라는 것을 이루어 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기억하는 일은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세상 속에 살게 될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시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와 같은 비극이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부당한 파병과 수많은 피해자들, 참전 군인들의 트라우마를 막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방법은 이 문제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적 책임을 계승하는 일이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변화는 진상을 규명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20년간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은 한국 사회에 베트남 전쟁 이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다양한 저서와 음반, 방송과 기사가 발행되었고 많은 시민들이 기꺼이 그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미안해요 베트남> 20주년인 2019년입니다. 더욱 많은 시민들의 삶 속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시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해당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과의 주체가 정부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면, 이러한 시도는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5. 전 과정을 통해 정의한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요?

한국 정부에 (대상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최종 목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새로운 기억을 정립해야 한다. (정의한 문제)

How

Idea & Impact
1.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현재 구상중이거나, 실천하고 있는 활동이 있나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직접행동과 온라인상의 활동이 다양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를 기억하는 상징물이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과 구조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기리는 피에타상이 만들어졌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그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보다 간단하게 제작된 상징물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구상 중입니다.

 

2)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행진이 필요합니다.

2019년 11월 말,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 행진을 구상 중입니다. 단순히 매체를 보고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그룹으로서 많은 시민들이 참가하기를 희망합니다.

2. 문제정의 과정에서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하였나요?

시민평화법정 공동주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시민평화법정을 여러 단체들과 공동 개최하였습니다. 한국 정부에게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 최초의 법정이었으며, 이후 국가 손해배상 청구 시작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였고, 시민평화법정이긴 하였으나 많은 법조인들이 참가하여 공신력을 높였습니다. 해당 법정에서는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민간 차원에서 진행한 법정이긴 하였으나 해당 법정의 결론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실제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자, 국가의 책임을 규명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추모와 기념 사이 - 당신은 베트남 전쟁을 알고 있나요?> 소책자 발행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보낼 소책자를 발행하였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한국 사회에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베트남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한국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소책자에 담아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참전의 배경과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실을 다뤄서 보다 객관적으로 해당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 캠페인

대학 내, 서울 전역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주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 서명운동을 진행했으며, 4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었습니다.

 

베트남 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활동가 인터뷰

한베평화재단의 구수정 씨, 석미화 씨, 한겨레의 고경태 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을 인터뷰해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하였습니다. 주로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한 분들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 공론화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인터뷰는 진상규명이 중요한 이유와 실제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3. 문제정의 과정을 진행하면서, 진행 이후에 느낀 점을 간단하게 적어주세요

가해국의 국민이라는 문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민들은 대부분 ‘가해자’의 위치에 서야 하는 난감함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역사 교육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등의 ‘피해자’의 서사를 강조하지만 베트남 등 우리가 가해자였던 역사를 조명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는 언제나 충격적이고,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문제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은 한국에 사는 국민들을 모두 가해자, 베트남에 사는 국민들을 모두 피해자로 치환 하지는 않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가해자-피해자가 양립하는 구도로 환원하는 대신, 베트남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과거의 ‘가해’를 넘어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이 더 많이 토론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개인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는 방식이 아니라 공동의 기억을 새로 정립하고,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의 손을 잡기 위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더욱 개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4.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추천할 자료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책>

1.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김현아 저, 책갈피 출판사

2. 1968년 2월 12일 퐁니퐁넛 학살 그리고 세계, 고경태 저, 한겨레 출판사

3.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 오준호 등 저, 내일을 여는 책 출판사

4. 미안해요 베트남, 이규봉 저, 푸른역사 출판사

5. 그녀에게 전쟁, 김현아 저, 슬로비 출판사

 

<영상>

1. 전쟁 1부, 두 개의 기억, 뉴스타파

2. 전쟁 2부, 책임 없는 전쟁, 뉴스타파

3. 조성모 아시나요 뮤직비디오

4.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기사>

1. 김진국이 만난 사람 - 문재인 대통령 사과, 베트남은 한줄도 보도 안했어요

2. 1968 꽝남 대학살, 대한민국 유죄, 2018.05.02

3. 민변, 이번엔 “한국군에 학살된 베트남 민간인 손배소”2019.07.31

 

<논문>

1.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기억의 정치, 심주형,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2. 한국과 베트남의 베트남전쟁에 관한 인식과 교육, 김종욱, 아시아연구, vol.20 No.4, 2017

팀 소개

연꽃아래
연꽃아래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청년 단체입니다. 전쟁을 국가적인 관점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아웃포커싱되어 잊혀져 갔던 전쟁 피해자의 관점으로 사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언제나 껄끄러운 일이지만, 그 껄끄러움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모여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서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팀 커리어
2017 평화콘서트 <imagine 연꽃아래 평화의 빛깔을 그리다> 개최
2017 <연꽃 아래에서 평화를 말하다> 기획 기사 오마이뉴스 연재
2018 베트남 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공동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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